헌 옷·가방 줄게 새것 다오…리폼 찾는 사람들
’내돈내산’해도 리폼하면 불법? 논란의 루이비통 소송
시름하는 리폼업체…소비자 권리 제한 우려도
’내돈내산’해도 리폼하면 불법? 논란의 루이비통 소송
시름하는 리폼업체…소비자 권리 제한 우려도
↑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리폼' 제품 판매 및 구매 후 되파는 게시글 /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
<헌 옷·가방 줄게 새것 다오…리폼 찾는 사람들>
최근 길에서 기장을 짧게 잘라 허리선을 강조한 ‘폴로’ 니트를 입은 사람들을 마주쳤습니다.
폴로 브랜드는 기장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클래식한 핏으로 유명한데, 어디서 구매한 걸까요?
이들은 “인스타그램 쇼핑몰에서 구매했다”고 답했습니다. 사이트에 들어가니 최신 유행에 맞춰 기존 브랜드 옷을 짧게 리폼한 옷을 주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옷, 가방, 등을 이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리폼업체들이 인기입니다.
지난 22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리폼숍을 찾자 꽤 많은 20대 고객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20대 여성 A씨는 헌 옷으로 제작한 가방을 살펴보며 “기존 브랜드 가방은 너무 비싸거나 올드해 보이는데, 여기 가방은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이 예뻐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 서울 소재 리폼샵에서 고객들이 가져온 가방을 수선해 지갑을 만들었다 / 사진=리폼숍 SNS 게시물 제공 |
명품가방수선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김 씨는 “세상에 하나 뿐인 나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저렴하게 요즘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구할 수 있어서 손님들이 리폼숍을 자주 찾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돈내산’해도 리폼하면 불법? 논란의 루이비통 소송>
하지만 지난해 11월 루이비통이 리폼 업체를 상대로 건 손해배상 소송 판결이 나온 후 리폼 업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는 루이비통 가방 원단을 잘라 지갑을 만든 리폼업체에 대해 손해배상금 1,500만 원을 지불하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이 업체는 고객 의뢰를 받고 제품 1개 당 10~70만 원에 해당하는 제작비를 받았습니다.
루이비통은 이 업체가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고, 리폼 업체는 해당 리폼 제품을 판매한 게 아니라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리폼 제품이 원제품과 혼동될 여지가 있고, 판매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상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지적재산권의 권리소진 원칙 부분입니다.
소진 원칙이란 한 물건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하고 적법하게 구매한 경우, 해당 물건을 자유롭게 가공·처분하거나 다시 중고로 팔아도 무방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정식으로 구매한 핸드폰을 중고로 되팔 경우, 핸드폰을 판매한 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핸드폰을 구매할 때 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했기 때문에 회사가 핸드폰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요구할 권리가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 소유권 값(로열티)을 지불해 판매할 권리는 해당 물건을 산 소비자에게 있다 / 사진=강혜원 인턴기자 |
이 때문에 소비자가 자신이 구매한 옷을 취향에 맞게 리폼해 입거나 판매하는 행위도 자신이 리폼한 것을 밝히기만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루이비통 판결은 수선업자가 물건을 구매한 사람 대신 리폼해준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셀프 리폼은 문제가 안 되지만, 돈을 주고 남에게 맡기는 게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시름하는 리폼업체…소비자 권리 제한 우려도>
당장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자들은 울상입니다. 서울 송파구에서 명품 가방을 지갑 등으로 리폼해주기로 유명한 B씨는 “이전에는 손님들의 리폼 의뢰가 많았지만 요즘은 줄어드는 추세”라며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B씨처럼 손님으로부터 의뢰를 받는 리폼업체 뿐 아니라 SNS에 칼하트, 나이키, OIOI 등 빈티지 의류를 리폼 판매하는 업체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뢰를 받아 리폼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량 구매해 리폼 판매하는 행위도 문제로 삼을 여지가 있다”고 MBN과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 대체로 리폼숍은 의류수거함과 해외 컨테이너에서 들어오는 옷을 가져와 직접 빨래하고 수선해 여러 제품으로 만든다 / 사진=강혜원 인턴기자 |
이에 리폼업체들은 대체로 시장이 위축될까 우려하거나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SNS 마켓을 운영하는 리폼업체 대표 C씨는 “판결 직후 리폼 관련 법안을 직접 찾아봤더니 동일성을 해칠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준이 없으니 혼란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판결이 내려진 지 3달이 지나가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대표도 “해당 판결 이후 루이비통 제품은 리폼하지 않고 있다”며 “원 제품에 없던 이미테이션(imitaion 모방) 장식이나 로고 등을 사용해 브랜드의 상품가치를 해한 것도 아닌데 이를 상표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해외 명품 A/S가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손님들이 리폼업체를 자주 찾으신다”며 “ 저희는 손님들의 요구에 (수선을) 해드리는 상황인데 이를 불법이라 규정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습니다.
나아가 해당 판결이 소비자들의 권리를 축소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박 교수는 “리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한정됐다”며 “리폼을 할 줄 모르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제 수선업자 등 타인에게 리폼을 맡길 수도 없으니 종전엔 소비자가 보장받았던 리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
루이비통 판결로 리폼시장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리폼시장에 칼을 빼들지 주목됩니다.
※ 인기척은 MBN '인'턴 '기'자들이 '척'하니 알려드리는 체험형 기사입니다.
[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sugykkang@gmail.com, 김혜균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mcatfish@naver.com ]